꼬꼬무 마타도어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 요제프 괴벨스 심리전 엄창록

2024. 4. 9. 13:11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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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이번 편은 '마타도어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던 엄창록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엄창록 씨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에요. 정치 선거에서는 '마타도어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죠. 특히, 1961년부터 김대중의 곁에서 활약하다가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쪽으로 넘어가면서 정치 경로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꼬꼬무 선가판의 나이트 knight

 

"마타도어의 귀재"라는 표현은 특정 인물이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상대방의 공격이나 비판을 능숙하게 회피하거나, 그 공격을 상대방에게 되돌려 보내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마타도어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황소사냥(불사)에서 황소를 상대로 하는 투우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 능숙함과 재치,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하는 용기 등을 정치적 상황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김대중 씨와의 인연, 그리고 변화

엄창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기 정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김대중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그의 정치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61년부터 김대중 씨의 곁에서 비서로, 조언자로 활약한 엄창록 씨. 특히,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씨의 약점을 보완하며 큰 역할을 했어요. 

꼬꼬무 킹메이커 마타도의 귀재 엄창록

 

하지만 그의 정치 생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어떻게 김대중으로부터 박정희로 정치적 충성을 옮겼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정치적 이동을 넘어서, 당시 한국 정치의 복잡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선거에서의 영향력

엄창록 씨는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김대중 씨가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부터, 박정희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기여하기까지, 그의 전략은 많은 선거에서 성공의 열쇠였어요.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967년과 1969년에 진행된 선거에서의 그의 활동은 호남 지역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인 대우를 비판하며 지역주의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지역 감정의 조장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으며, 엄창록의 정치적 전략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꼬꼬무 선거판의 여우 엄창록 조작극의 전문가

 

지역감정과의 싸움

그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지역감정은 더욱 격화되었고, 이는 정치적 분열의 큰 원인 중 하나가 되었죠. 그러나 엄 씨의 전략은 때로는 이 지역감정을 이용하기도 했어요.

 

엄창록의 삶과 활동은 영화 "킹메이커"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엄창록과 김대중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 킹메이커 예고편 설경구 이선균 주연

그의 삶의 마지막에는 1987년 대선과 관련하여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 측에서 그를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그는 노태우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이러한 예측은 결국 실현되었습니다.

 

1988년 세상을 떠난 엄창록 씨. 그의 삶과 정치 여정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어요.

 

선거 전략가로서의 그의 역할은 한국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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