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부산행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광복절 수천명 사망

2024. 1. 22. 16:51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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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4일, 조선인 피징용자들을 태운 우키시마호는 돌연한 폭발로 인해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꼬꼬무 부산행 이 침몰 사건은 단순한 해난사고로 여겨질 수 없는, 아직도 많은 의혹을 안고 있는 역사적 비극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우키시마호 사건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키시마호는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태운 귀국 1호선이었습니다. 부산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배는, 일본 아오모리 오미나토항을 출발한 후 이유 없이 항로를 남쪽으로 틀었습니다. 그 후 교토 북부 마이즈루시 앞바다에서 큰 폭발과 함께 배는 두 동강 나며, 수천 명의 우리 국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꼬꼬무 부산행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꼬꼬무 부산행 우키시마호 침몰사건

1. 엇갈리는 침몰 원인

일본의 계획적인 범죄라는 시각:  당시 생존자들은 우키시마호의 폭발을 일본 해군의 계획적 범죄로 보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수상한 정황을 연달아 밝혀내며, 폭발이 내부에서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키웠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우연한 기뢰 폭발로 인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왜 배가 부산으로 가던 중 갑자기 항로를 바꾸었는지, 왜 사고가 난 해역에서 우키시마호만 사고를 당했는지, 그리고 일본 해군이 왜 사고 직전에 배를 탈출했는지 등, 당시 상황을 둘러싼 다양한 증언들은 이러한 의심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KBS역사저널 우키시마호 침몰 미스터리

 

기뢰 충돌로 인한 침몰이라는 시각: 반면, 일본 측은 우키시마호가 미군에 의해 부설된 기뢰에 접촉해 침몰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기뢰와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들어 이를 뒷받침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여러 의문점을 남기고 있으며, 일본 측의 설명이 모두를 납득시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키시마호 침몰

2. 우키시마호의 의문스러운 항로

우키시마호의 항로는 여러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일본 북부에서 부산으로 향해야 할 항로와는 달리, 우키시마호는 마이즈루항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러한 경로 변경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군의 의도적인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키시마호 사망자수

3. 정확한 탑승자와 사망자 수

일본 정부는 사망자를 524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승선자 수는 5천명에서 8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역사의저널 우키시마호 탑승자수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조선인이 우키시마호에 탑승했으며, 사망자 수 역시 공식 발표된 숫자보다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1만 3천명이 탑승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승선자 명부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탓에 정확한 숫자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꼬꼬무 일본 우키시마호 침몰사건

4. 일본 정부의 사건 처리

일본 정부의 사건 처리 방식은 많은 의문을 남깁니다. 선체의 인양과 관련된 조사의 부재, 사건에 대한 정보의 은폐 등은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진실을 향한 의구심을 키우게 만듭니다.

 

현재,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영용 회장과 같이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여전히 정의를 찾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역사 속의 비극이자, 진실을 향한 여정입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사건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이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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