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영화 서울의봄 하나회의 시작 그리고 끝 충성이라는 욕망

2024. 3. 5. 17:41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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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사 역사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회는 많은 논란과 비밀을 안고 있는 조직입니다.

 

꼬꼬무 하나회편은 대한민국 육군 내에 비밀리에 결성된 조직으로, 전두환,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하나회의 탄생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과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꼬꼬무 하나회의 시작 그리고 끝

 

하나회의 탄생과 성장

하나회는 1950년대 초,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을 중심으로 한 사조직으로 같은 시기에 입학한 친구들이 모여 결성한 친목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동기간의 우정과 연대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점차 그 성격이 변화하며 군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초기에는 ‘칠성회’라 불렸으며, 육사 20기 이후에도 영관급까지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하나회는 윤필용 사건을 계기로 공식 해체되었지만, 12·12 쿠데타를 주도하며 다시 크게 부상했습니다.

꼬꼬무 하나회 칠성회

하나회의 활동과 영향력

하나회는 군대 내 요직을 독점하며, 주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까지 올라섰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친목을 넘어서, 국가의 중대한 결정과 방향에까지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79년 10.26 사건 이후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사건들은 하나회의 군 내외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들입니다.

꼬꼬무 하나회 활동 절대권력

전두환 쿠데타: 12·12 군사쿠데타

1979년 12월 12일, 한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육군 소장 전두환은 신군부 세력과 함께 군사 반란, 일명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 사건은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다시 한번 조명되었는데, 이 영화는 쿠데타 당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신군부와 진압군 사이의 9시간에 걸친 격렬한 대립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꼬꼬무 하나회 전두환

쿠데타의 배경: 보안사령관과 하나회

전두환의 쿠데타 성공은 '보안사령관'과 '하나회' 두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바 있기 때문에,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보안사가 있었고, 그 핵심 임무는 쿠데타를 포함한 모든 전복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의봄 1212군사 쿠데타

 

쿠데타를 막아야 할 주체가 바로 쿠데타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서의 권한을 악용하여, 군 통신망을 통해 진압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했습니다. 쿠데타의 성공은 이처럼 철저한 내부의 배신과 조직적인 준비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원래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 조직으로 시작한 하나회는 박 대통령의 비호 아래 성장했으며, 박 대통령과 하나회 사이에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사망 후, 이 기생생물 같은 조직은 숙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12·12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서울의봄 수도방위사령부 VS 보안사령관

하나회의 몰락과 후폭풍

하나회는 1987년 6월 항쟁과 이후의 정치적 변화 속에서 그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하나회 내의 분열이 심화되었고, 이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이루어진 숙청 작업을 통해 사실상의 해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하나회의 해체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대한민국 군대와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하나회 숙정을 큰 업적 중 하나로 꼽았듯이, 하나회의 역할과 그 숙정 과정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김 대통령은 과감한 조치로 하나회와 관련된 인사들을 대거 정리하며, 쿠데타의 잔재를 청산했습니다. 이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문민 통제 원칙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의봄 12월12일 군사혁명

쿠데타의 잔향

"서울의 봄"은 단순한 역사 영화를 넘어, 민주주의와 권력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탐색을 제공합니다. 이 영화는 쿠데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분석하며, 민주군대의 중요성과 문민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한국이 겪은 고통스러운 역사적 순간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더욱 성숙하고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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