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대연각 호텔 화재 마천루를 덮친 화마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

2024. 4. 30. 19:16일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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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 호텔 화재: 서울의 블랙 크리스마스

1971년 12월 25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대연각 호텔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성탄절이라는 행복한 날에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 모여 있던 상황에서 일어나, 총 166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또한, 25명이 실종되었으며, 이 중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의 위셴룽 공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꼬꼬무 마천루를 덮친 화마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

1. 호텔의 구조와 역사

대연각 호텔은 1969년에 완공된 21층 건물로,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이었습니다. 호텔은 222개의 객실과 8대의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었으며, 다양한 행사와 결혼식장으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호텔은 여러 차례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여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꼬꼬무 대연각호텔 화재

2. 화재의 발생

화재는 호텔 1층 커피숍에서 LPG 가스통 폭발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당일, 추가적으로 저장되어 있던 20kg 프로판 가스통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화덕에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화재는 매우 빠르게 확산되어 건물 전체를 휩쓸었고, 내부 장식의 가연성 물질 때문에 불길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카펫과 목조 시설을 태우며 건물의 21층까지 빠르게 퍼졌고, 강한 바람은 불길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충무로동의 하늘은 거대한 검은 연기와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이 비극적인 장면은 배정환 기자에 의해 포착되었으며, 그의 사진은 전 세계에 이 비극을 알렸습니다.

마천루를 덮친 화마

3. 대응과 구조 작업

화재 진압에는 528명의 소방관과 다수의 의용소방대원, 경찰, 구청 직원 등이 투입되었습니다. 서울 시내 모든 소방차가 동원되었으며, 육군 항공대와 공군, 미8군의 헬리콥터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출동한 인력은 총 1,923명에 달했으며, 소방차 52대, 구급차 15대, 헬기 10대 등의 장비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의 구조적 문제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신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일부 생존자는 옆 건물 옥상으로 피신하거나, 침대 시트를 이용해 창밖으로 탈출하는 등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꼬꼬무 명동 대연각 화재

4. 피해 상황

이 화재로 인해 객실에 묵고 있던 내외국인 163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63명에 달했습니다. 피해액은 8억 5천만원으로 추산됩니다. LPG 가스용기가 실내에 보관되어 있었고, 화재 경보기 및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여러 안전 미비 사항이 큰 피해를 낳았습니다.

 

5. 화재 이후

이 참사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을 덮기 위해 독재 체제 강화를 위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밀어붙였습니다. 대연각 호텔이 위치했던 자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화재를 겪은 곳으로, 재난을 미리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크게 지적되었습니다.

 

이 참사 이후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화재 경보설비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법은 화재 피해자들에게 보다 나은 보상을 제공하고, 향후 비슷한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많은 생명을 잃었우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와 예방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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