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장흥 공작사건 신호수 의문의 자살 아들을 찾아서 동굴속 죽음의 비밀편
꼬꼬무 이번편은 장흥공작사건으로 유명한
1986년 신호수 의문사 사건이라 합니다
전라남도 여수시의 한 야산 동굴에서
목이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이 시체는 경찰조사결과
23살의 가스 배달원 신호수씨로 밝혀 졌는데요
대공경찰에 연행된지 8일만에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신씨의 유가족들은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서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요
1985년 6월까지 방위병으로 복무한 신씨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자취방에서 북한의 선전전단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신씨가 이사 가고 새로 들어온 입주민이
이 방에서 전단 34장을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합니다
전단의 수상함을 느낀 경찰은 몇달간 신씨를 내사하고
1986년 6월 11일 서울 서부 경찰서 대공2계에서 영장없이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북한 전단을 모았을까?
신씨가 복무했던 부대에서 삐라(북한전단)를 모아오면
특별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르로 경찰이 간첩으로 몰려서
온갖 가혹행위를 하다가 결국 신씨가 숨지자
자살로 위장한것으로 보는데요
신씨의 유가족들은 영장도 없이 연행하고
8일만에 전남 여수 돌산읍 고향부근 대미산
동굴에서 목이 매달린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했는데요
발견 당시 자신의 허리띠로 양팔을 묶고
입고 있던 와이셔츠와 바지를 묶어서
목에 매달아서 타살이라고 주장을 하였는데요
자살이 아닌 증거는?
그 동네 사람들도 자주 가지 않는 동굴에서
혼자서 절대 저런 모습으로 자살을 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거기에현장에 소지품을 불태운 흔적들과
신씨가 불태운 라이터등 증거품들은 발견도 안되는등
의혹만 남았는데요
그 당시 대공 2계 차경사는 당시 신씨를 조사하다가
혐의가 풀려서 연행 4시간만에 오후 6시에 훈방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훈방으로 나온 신씨를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고
다시 잡혀서 들어간것이 아니냐는 의혹만 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영장없이
불법 구속한 손해배상금 청구은 인정받았지만
끝내는 경찰의 가혹행위를 인정 받지 못햇다고 합니다
대법원도 경찰이 가혹행위 해서
신호수씨가 숨졌다는 증거...
그것도 경찰이 자살로 위장해서 시신을 유기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1986년은 전두환 정권시절로 사건사고가 많았는데요
인천시민회관 앞에서 대규모 가두시위가 벌어진
5/3 인천사태가 벌어진 시기와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등
재야 운동권 탄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라 합니다
아무 죄 없는 23살의 젊은 청년이
간첩으로 몰리면서 온갖 고행을 겪으며
숨지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불상사를 기억하면서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이야기>